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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


지나치게 오래 기다려왔습니다. 

마블이 아이언맨을 위시해 캡틴 아메리카 등 어벤저스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을때 DC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3부작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작품이 없었죠. 아니, 크리스토퍼 리브 이후 조용히 사라진 슈퍼맨이나 조엘 슈마허가 망쳐놓은 배트맨 이후 DC는 코믹북 슈퍼히어로의 영화화에 쉽게 뛰어들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흥미야 있었겠지만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간판 캐릭터를 어떻게 살릴지 부터가 막막했을 겁니다. 

그러다 나온 것이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Batman Begins, 2005)였습니다.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2008)의 연이은 성공과 함께 그린 랜턴 : 반지의 선택(Green Lantern, 2011)의 처절한 실패로 인해 DC는 본격적으로 마블과 차별화되는 본연의 색깔을 정했고 그때부터 자신감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둡고 무거우며 현실적인 배경에, 행동에 따르는 결과를 보며 고뇌하는 인간적인 영웅들을 그리는 것으로 말이죠.

물론 다크 나이트 3부작은 성공적인 시리즈로 막을 내렸고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2013)을 시작으로 DC확장유니버스(DCEU)가 새롭게 시작하고 있지만 다크 나이트 3부작이 가진 색깔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DCEU는 맨 오브 스틸로 제법 괜찮은 첫발을 디뎠습니다. 

헨리 카빌의 슈퍼맨도 좋았고 주조연들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액션도 좋았고요. 서사도 좋았습니다. 최고의 오락영화라고 부를 순 없지만 전체적으로 좋았어요. 다크 나이트와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어차피 세계관이 다른 별개의 시리즈나 마찬가지니까요. 

배트맨 대 슈퍼맨은 이제 겨우 두번째 걸음입니다. 겨우 두 편의 작품으로 마블을 따라잡겠다는 건 과욕이죠. 하지만 DC는 그러기로 합니다. 시작이 늦었거든요. 리부트도 여러번, 실패와 성공을 차곡차곡 겪어가며 마블이 만든 시네마틱 유니버스, 어벤저스 시리즈를 따라잡겠다고요. DC는 겨우 두번째 주자에 저스티스 리그를 출범합니다. DC는 슈퍼맨과 배트맨이 가진 네임벨류 자체만으로도 마블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저스티스 리그의 출범 맞습니다. 맨 오브 스틸 2도 아니고 배트맨 대 슈퍼맨도 아니고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이에요. 부제가 오히려 제목으로 적절하죠. 

영화는 전작 맨 오브 스틸에서 파괴된 도시 메트로폴리스의 '피해'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지구를 구하긴 했지만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존재에 대한 의문, 정치종교언론의 반응,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 묘사 등 영웅담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굉장히 새롭고 참신한 방법이었습니다.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전능한 '신'이 우리 눈 앞에 나타나 힘을 휘두른다면 우리는 그 힘을 따뜻한 아버지의 보호로 여기고 반겨야 할까요 아니면 그 힘이 우리에게 뻗어올 것을 두려워해야 할까요. 영화는 묵직한 질문을 던져주고 배트맨의 입장, 슈퍼맨의 입장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여기까진 좋아요.

배트맨은 그 누구보다 슈퍼맨과 싸워야할 이유가 주어집니다. 전 인류에게 위협이 될수도 있는 슈퍼맨을 죽이는 것이 사명이라 여깁니다. 그냥 이기거나 제압하는게 아니라 죽이려고 해요. 이 영화에서 살상금지라는 원칙은 사실 물 건너 간지 오래거든요. 게다가 슈퍼맨은 친구도 뭣도 아닌 외계인일 뿐이죠. 

이빨을 세우고 달려든 상대에게 맞서 싸우는 슈퍼맨은 그 이유가 다소 초라합니다. 인질이라니요. 물론 인질의 중요도 나름이겠지만 그래도 인질이라니요. 슈퍼맨이 인질을 직접 구하려들지 않는다는 것부터 잘못됐다고 봐요. 그건 그렇다치고 넘어가죠. 어찌됬든 인질의 목숨도 걸려있어요. 슈퍼맨은 배트맨이 만만찮은 상대임을 깨닫고 그 스스로도 목숨을 걸어야죠. 조드와 싸울 땐 그랬잖아요. 이 악물고 악 써가며 싸웠잖아요. 처절하게 싸웠잖아요. 그러기엔 배트맨이 너무 약한가? 그럼 영화 제목이 배트맨 대 슈퍼맨이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요?

둘의 싸움은 맥없이, 또 짧게 끝나고 새로이 등장한 막강한 존재 둠스데이에 맞서 힘을 합쳐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배트맨과 힘을 합치진 않아요. 난데없이 나타난 원더우먼의 도움을 받습니다. 배트맨은 구경만 합니다. 한 대 때려볼 시도조차 않습니다. 슈퍼맨한테 달려들던 배트맨 맞나요? 강화슈트가 망가졌으면 알프레드더러 무인비행기 날려 예비 강화슈트 뭐 하나 보내달라하던가.

렉스 루터처럼 둠스데이도 그저 일회성 악당으로 소모됩니다. 그냥 의지없는 짐승으로만 묘사되죠. 여러모로 DC의 성급함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둠스데이의 존재를 공개했던 두번째 예고편이 그냥 영화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오로지 슈퍼맨만의 이야기였어야 했습니다. 

리부트할 예정인 배트맨을 굳이 처음 등장시켜서 슈퍼맨과 싸우게 만들 필요는 없었어요. 슈퍼맨과 대립해야할 캐릭터는 배트맨도 둠스데이도 아닌 렉스 루터입니다. 배트맨에게 숙적 조커가 있듯이 슈퍼맨과의 대립 구도 정점에 서 있는 자는 렉스 루터에요. 이 영화의 메인 악당은 렉스 루터여야만 했고 왜 슈퍼맨이 앞으로의 시리즈에서도 그와 싸울 수밖에 없는지, 왜 렉스 루터가 슈퍼맨의 숙적인지를 보여줬어야죠. 


차라리 배트맨이 원더우먼 정도의 분량으로 나왔으면 어땠을까요?

배트맨은 그저 브루스 웨인으로서 슈퍼맨과 렉스 루터 간의 치열한 싸움을 지켜봅니다. 고담시의 악당들만으로도 벅차요. 아니면 그냥 은퇴했다는 설정 그대로 가는 것도 괜찮겠죠. 영화가 제시한 질문인 '신처럼 강력한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란 질문에 배트맨도 고뇌합니다. 알프레드와 말씨름도 하다가 결국엔 '위험한 존재니까 싸운다'라는 쪽을 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렉스 콥스와 제휴를 한다던가해서 렉스 루터를 재정적, 기술적으로 지원하나 그 과정에서 그의 어긋난 야심을 알게 된 이후로는 떨어져나와 독자적으로 강화슈트를 개발하고 렉스 루터와 슈퍼맨과의 싸움을 통해 알게된 크립토나이트를 전술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모습 정도로 배트맨 파트를 그쳤으면 더 나았을 거라 생각해요. 후속편에서 진짜 배트맨 VS 슈퍼맨을 볼 수 있도록 말이죠.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입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스크린을 압도할 만한 영웅 캐릭터 셋을 준비없이 한 편의 영화에 우겨넣었습니다. 메인 테마조차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보단 원더우먼 테마만 지나치게 울려댑니다. 물론 팬들의 기대치가 최고조에 올랐던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테죠. 

어찌됬건 저는 이 영화를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은 슈퍼맨과 배트맨의 대립을 볼 수 있는 최초의 영화입니다. 원더우먼도 가세하며 앞으로 DCEU를 이어나갈 플래시, 아쿠아맨, 사이보그의 모습도 잠깐이나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 그걸 영화 중간에 보여줘서 맥을 끊었는지는 의문이지만) 

DC는 캐스팅 만큼은 마블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벤 에플렉의 배트맨은 예정된 단독 영화를 통해 역대 최고의 배트맨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덤으로 집사 알프레드가 좀 더 조력자 역할로 변모한 것에 맞게 제레미 아이언스를 캐스팅한 것도 적절했습니다. 헨리 카빌의 슈퍼맨은 이미 검증되었으며 원더 우먼을 연기하는 갤 가돗 역시 단독 영화를 기대하게 만들기엔 충분했죠. 앞으로 나올 수어사이드 스쿼드(Suicide Squad, 2016)의 조커 자레드 레토나 할리 퀸의 마고 로비 등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이 영화로 인해 DCEU의 제작에 차질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계속 돈내고 볼게요. 제발.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평점을 매기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로. 평점이 무슨 소용입니까. 전 이들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말이죠.

그래도.. 앞으로 올릴 리뷰와 통일성을 둬야 하니까.

★★★☆

참고로, 전 맨 오브 스틸에 8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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