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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Lucifer, 2016 시즌1 완)


Fox 채널의 미드 루시퍼는 얼마전 시즌1을 종영했네요. 시즌2가 공식 확정되었다는 군요. 하지만 미드 루시퍼는 제 취향은 아닙니다. 파일럿 에피소드를 보고도 조금도 흥미가 가지 않더라고요. 이런 소재는 제가 정말 좋아함에도요. 결국 8화까지 겨우 보다가 말았습니다. 7화가 아주 약간 흥미롭긴 했지만 대단치는 않아요. 결국 다음 이야기가 조금도 궁금하지 않거든요. 이런 종류의 드라마로선 치명적이죠.


특이한 존재 혹은 뛰어난 누군가가 평범한 경찰과 함께 매 에피소드마다 범죄를 해결하는 것은 요즘 범죄수사물의 기본 베이스죠. 무척이나 흔한 방식입니다. 어디 보자. 멘탈리스트도 있었고.. 데미안 루이스의 라이프도 있었고.. 샤크도 있었고.. 아, 블랙리스트도 있죠. 레인즈도 있고.. 조금은 다르지만 한니발도 추가할 수 있겠네요. 어쨌든 엄청 많습니다. 최근에 나오는 범죄수사물은 거의 다 이 방식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CSI에서 과학수사는 이미 다 보여줬으니 말이죠. 범죄심리분석은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전담하고 있고요.

미드 루시퍼는 수많은 동종의 타 미드들과 다른 매력을 뽐내며 장수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럴 것 같진 않습니다. 


지옥의 군주 루시퍼가 인간세상에 온지 5년이 흘렀습니다. 나이트클럽의 사장으로서 퇴폐적인 생활을 지속하던 루시퍼는 어느날 갑자기 예쁜 여형사의 삶에 참여하기로 합니다. 악마로서가 아니라 그냥 친구로서죠. 네, 악마가 아니라요.

루시퍼는 민간자문 역할로 여형사와 파트너를 이루는데 놀랍게도 악마의 능력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가끔 눈을 희번떡 떠서 상대의 숨겨진 욕망을 실토하게 하는 것이 전부죠. 가장 큰 문제가 이겁니다. 상대의 욕망을 실토하게끔 하는 능력이 있지만 결국 그 사람의 본질이나 사건은 꽤뚫어보질 못해요. 참으로 소박한 능력 아닙니까?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악마의 제왕치고는 말이죠. 상대하는 이의 본성을 꿰뚫어 본다면 사실 사건 해결이 너무 쉬워지니까 어쩔 수 없다고 쳐요. 그럼 뭔가 사건에 도움되는 다른 능력이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불사신? 루시퍼가 위협을 받는 장면 자체가 적을 뿐더러 불사신이란 특징 자체도 나중엔 없어져요. 아직까지도 그 이유가 안나왔는데 언제까지 미루려는 걸까요? 제가 보기를 중단한 8화에 나올까요? 상관없어요. 문제는 불사의 능력이 사라진 이유를 그 자신도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인공 당사자가 궁금해하지 않는데 시청자가 어떻게 궁금해할 수 있을까요? 뭔가 해야할 이야기를 안하고 넘어가는 것 같은데 하면서 찝찝한 마음을 품고 그냥 보게 되는 거죠. 흥미를 잃어가면서요. 이야기가 조금 엇나갔는데 어쨌든 루시퍼는 별다른 능력이 없어요. 괴력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장면은 안나옵니다. 화가 나서 벽을 쳤는데 벽에 구멍나는 정도를 기대한 건 아니었어요.


루시퍼 캐릭터는 왜 영국말투를 쓸까요? 그냥 미국인들 보기에 매력적이어서? 그래서 인간세계에 온 직후부터 영국말투를 쓰기로 맘먹었을까요? 그의 모습 자체도 수다스럽고 가벼워보인다는 것이 그닥 맘에 안들지만 뭐, 루시퍼는 실재가 아니니까 작가가 설정하기 나름이겠죠. 하지만 신의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음에도 신께 버림받아 지옥의 군주가 된 루시퍼임에도 불구하고 극중에서 묘사되는 그의 모습은 한 일주일 전쯤에 어떤 일로 아버지한테 삐져서 일탈활동을 하고 있는 철없는 소년에 가깝습니다. 연출자는 루시퍼의 감정과 속내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로 정신과상담의와의 상담을 활용하고 있는데 그 깊이는 그다지 깊지 않습니다. 악마를 주인공으로 삼고 천사를 등장시키고 인간 세상을 배경으로 삼았으면서 악마와 천사와 인간의 이야기는 안 나옵니다. 그냥 범죄수사만 합니다. 그것도 제대로 못하죠. 매 에피소드마다 벌어지는 범죄가 별로 흥미롭지 않으며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큰 이야기 자체도 없습니다. 여주인공 형사가 동료들로부터 배척받고 멸시받는다면서 정작 그녀가 동료들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장면은 없으며 그녀도 딱히 슬퍼하지도 않고 신경도 안씁니다. 계기가 된 사건을 7화에 들어서서야 겨우 풀어나가기 시작하고 여형사의 이야기는 늦게나마 시작될 것 같은데 루시퍼의 큰 이야기는 여전히 없습니다. 왜 지옥을 버리고 인간세상에 왔는지 일말의 단서조차 시청자들에게 주지 않습니다. 미드 루시퍼에는 기대되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주변 캐릭터들도 별로 매력이 없습니다. 루시퍼를 따라 지옥을 벗어난 여자 캐릭터는 이름이 생각 안 날 정도로 별 활약이 없으며 루시퍼를 지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인간세상에 온 천사 흑인 아저씨도 이름이 생각 안 납니다.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처음엔 그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인간들에게 그 존재를 숨기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이 이야기도 좀 하고 싶은데 글이 너무 길어지니까 줄이고...

현재까지 나온 비 인간 캐릭터는 주인공을 포함해서 이들 셋인데 그 묘사가 처참할 정도로 상상력이 없습니다. 영화 콘스탄틴에도 한참 못미쳐요. 둘 다 DC코믹스가 원작인데 왜 이렇죠? 다른 주변 캐릭터들도 존재감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제 역할 겨우 하는 캐릭터가 여주인공입니다. 이건 연출이나 각본이나 연기 덕분이 아니라 그냥 배우가 예쁘기 때문이에요. 똑같은 배우가 미드 하와이 파이브 오의 몇 에피소드에 조연으로 나왔을 때가 존재감이 더 컸어요. 긴 머리 휘날리며 눈 날카롭게 뜨고 전속력으로 범죄자를 쫓아 뛰어가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미드 루시퍼는 배우나 캐릭터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8화까지 감상하면서 좋았던 장면 딱 하나 있습니다. 주인공 루시퍼와 한때 형제였던 천사 둘이서 경매장에 잠입하고 그곳에 전시된 가짜 성물을 보면서 어이없어하며 자기들끼리 웃는 장면이 있는데 참 괜찮았어요. 왜 그런 장면을 좀 더 만들어 넣지 않을까요? 위에서 했던 이야기지만 또 합니다. 인간세상에서 악마가 주인공이고 천사가 등장하면서 왜 그 이야기가 없을까요?




3점 매겼다가 그냥 별점으로 바꿨습니다. 앞으로를 생각해봐도 1점 2점 줄 드라마가 없을 것 같아서요...

라고 글을 쓴 직후 그냥 좀 더 봤어요. 아주 약간 볼만해지네요. 전체적인 스토리에 진전이 있으며 9화에서 신부를 향한 루시퍼의 적대감이 유머스럽게 그려지면서 재밌었어요. 주변 캐릭터들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듯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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