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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 (Gotham, 2016 시즌2 완)


Fox의 드라마 고담은 2014년 예고편만으로 배트맨의 팬인 제게 엄청난 전율을 가져다 줬고 기대하게끔 만든 미드였습니다. 펭귄이 있기 전에, 캣우먼이 있기 전에, 포이즌 아이비가 있기 전에, 배트맨이 있기 전에!!! 고담이 있었다!!! 카피부터 소름이 돋더라고요. 하지만 뭐.. 제가 그렇게 운이 좋은 편이 아니죠. 제가 기대하는 컨텐츠는 대부분 절 실망시키더군요. 최근에 배트맨 대 슈퍼맨이 그랬듯이요.


사실 전 DC코믹스의 전통적인 팬은 아닙니다. 게임 아캄시리즈의 엄청난 팬이며 한국에 정발된 몇가지의 배트맨 코믹스를 소장하고 있고 몇가지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본 정도죠. 배트맨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코믹북히어로입니다. 하지만 미드 고담에 배트맨은 안 나옵니다. 배트맨의 팬이라면 모두가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배트맨 시리즈의 강점은 배트맨 캐릭터 뿐만 아니라 엄청난 수의 매력적인 빌런들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미드 고담은 바로 그 매력적인 빌런들의 이야기를 펼쳐놓기 좋은 무대입니다. 웨인 부부가 피살당한 직후의 고담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타락을 향해 질주해가죠. 부정부패가 만연한 곳에서 뒤틀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수를 써야했을 겁니다. 팔코네 패밀리와 마로니 패밀리가 양분하고 있는 범죄조직의 틈바구니에서 훗날 펭귄으로 불리며 자신만의 범죄조직을 이끌 자가 그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고 훗날 블랙마스크로 불릴 자도 그 가능성을 드러낼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공포가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 생각하는 학자가 삐뚤어진 연구를 하고 있고 아내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한 과학자는 급속냉동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용병으로 활동하며 의뢰를 받아 사람을 죽이는 뛰어난 명사수도 있을 것이고 수수께끼에 집착하며 우월함을 뽐내려는 싸이코도 있을 겁니다. 저 밑 하수도에서는 식인을 하는 악어인간이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어둠의 자경단이 나타나기 전까지 선한 사람들은 점차 사라지고 선과 악의 경계조차 희미해집니다. 하루하루 살기 위해서 고양이처럼 날렵한 몸놀림으로 도둑질을 일삼는 소녀도 있고 어떤 어린 소녀는 사랑을 받지 못해 인간보다 식물을 오히려 더 사랑하게 되겠죠. 상황은 갈수록 나빠집니다. 일개 경찰인 제임스 고든 혼자서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희망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면서 고담은 무너져내립니다. 부모를 잃은 한 소년은 이 도시에서 정의가 실현되기란 어려우며 결국 자신의 한계, 법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 괴로운 과정을 겪게 되겠죠. 


고담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족합니다. 많이 보여줄 필요 없어요. 어차피 제작비가 제한된 TV용 드라마잖아요. 어차피 태생적으로 본판이 될 수 없는 프리퀼에 불과하잖아요. 배트맨은 아직 꼬마일 뿐이라 그가 짜릿하게 악당들을 때려잡는 이야기는 결코 나오지 못하며 배트맨의 등장이 무의미해지지 않아야하니 경찰 제임스 고든이 굵직한 범죄자들을 철창 안에 가두어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일 따위는 거의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미드 고담은 선한 자들의 싸움이 갈수록 힘겨워지며 악한 자들이 갈수록 득세하여 그 정체성과 존재감을 키워나가는 이야기여야 합니다. 가면을 쓴 자경단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이 드라마의 역할이죠.



하지만 두 개의 시즌을 마무리한 미드 고담은 그런 방향과는 많이 엇나갑니다. 여전히 갈피를 못잡고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기만 해요. 다양한 등장인물에게 정체성을 천천히 부여해야 하지만 펭귄 오스왈드 코블팟 한 캐릭터에게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미드 전체를 한마디로 정의해서 펭귄 라이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에요. 펭귄 캐릭터 혼자 너무 많은 일을 겪습니다. 조무래기였다가 어둠의 제왕이 되지만 다시 보잘것없는 놈이 되고 스토리상 크게 상관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자꾸 겪으며 날개를 펼쳤다 접었다, 넘어졌다 일어섰다, 야심을 드러냈다가 감췄다가 하는 등 불필요한 운명을 혼자 다 겪습니다.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도 서로 얽혀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장면을 늘리기 위한 불필요한 이야기에 의해 억지로 한두번 연결될 뿐이에요. 예로 리들러와 한번 엮이지만 그 때의 일이 앞으로 둘의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 것처럼요. 


다른 캐릭터들은 묻히거나 소모성으로 전락합니다. 선과 악이 아니라 본인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해야할 캣우먼은 브루스 웨인의 가장 든든한 친구 캐릭터가 되버렸고 그녀의 친구 포이즌 아이비는 단 한번도 엑스트라 이상의 모습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악역 피시 무니는 자꾸 나오는 덕에 그 존재감은 있습니다만 그녀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어요. 배우의 연기가 특별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그녀의 이야기는 미드 고담의 스토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소규모 범죄조직을 이끌며 사투를 벌일 때까지는 좋았어요. 거기서 끝나야했습니다. 알수없는 실험실? 감옥? 같은데 갇혔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다시 쓰러지는 이야기는 없어도 상관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조력자로 나오는 길지언 부치 역시 마찬가지죠. 계속 나오긴 하는데 자기 캐릭터가 없습니다. 빅터 재즈는 어디갔죠? 하비 덴트는... 하.. 차라리 나오지나 말지. 그냥 아직 법대생 정도로 설정하던가.


소년 브루스 웨인은 처음부터 뒤죽박죽입니다. 부모의 죽음을 파헤치는 아들의 모습 묘사나 제대로 끝낸 뒤에 부친의 업을 잇기 위해, 고담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지, 고담을 구해야한다는 책임감이나 초월적 존재가 되야할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지도 못한채 갑자기 뜬금없이 자기를 단련해야한다느니 연구를 한다느니 하다가 부모의 죽음의 배후를 밝힌다면서 고집센 어린아이처럼 이상한 곳만 두드려댑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집사 알프레드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죠. 주인공 브루스 웨인 캐릭터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이 배트맨 프리퀼이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가장 큰 문제는 시즌 전체를 잇는 큰 이야기 자체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어찌나 얄팍한지 기억조차 잘 안나요. 두 마피아 조직의 틈바구니에서 펭귄과 피시 무니가 열심히 발버둥치면서 범죄조직 간의 다툼을 그린 범죄스릴러처럼 스토리를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암흑가에는 공백이 생기고 범죄조직 이야기는 더 이상 안나와요. 갑자기 등장한 테오 갈라반이 케케묵은 가문의 원수를 갚겠다며 어린 꼬마 브루스 웨인을 죽이려다 미끄덩하고 언제부턴가 갑자기 스트레인지 교수가 툭 튀어나와서 아캄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것으로 나오죠. 전체 스토리 자체가 일관성이 없어요. 흥미롭지도 않고요. 그 사이사이에 일회성으로 소모하기 아까운 악당 캐릭터를 한편한편 이어나가는데 써버리고 그 에피소드가 끝나면 언급조차 없습니다. 떡밥만 어설프게 던집니다. 팬을 위한 팬서비스치고는 약하고 팬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는 불친절하죠. 일렉트로큐셔너 비슷한 녀석이 한 편 나왔다가 그냥 사라지고 베놈 약물처럼 보이는 것이 나오더니 또 안 나오고 스케어크로우로 보이는 애가 나오더니 그 이후엔 안나오고 언급조차 없고 블랙마스크의 아버지로 추측되는 사람이 나왔다가 어설프게 체포되고 이후 언급도 없습니다. 한 명의 빌런 캐릭터가 한 편의 에피소드에서 소모성으로 사용됩니다. 


미드 고담은 뛰어난 각본가와 연출가에게 투자해야할 제작비를 만화틱하고 어설픈 분장에 쏟아붓습니다. 그 따위 허접한 미스터 프리즈는 보고 싶지 않았어요. 아캄 정신병원 묘사 역시 처참한 수준입니다.



고담 시즌3이 확정된 이유는 이 드라마가 특출나거나 재밌어서가 아닙니다. 허술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자꾸 하는데도 계속 보는 이유는 펭귄이 어떻게 고담 최대의 범죄조직 중 하나를 이끌게 될지 궁금해서에요. 니그마가 언제 어떻게 천재 범죄자 리들러가 될지 궁금해서에요. 다음에는 과연 어떤 빌런이 새로 모습을 드러낼까 궁금해서에요.


시즌3에서는 고담의 숨은 세력 올빼미 법정이 다뤄질 듯하고 슈퍼빌런들도 등장할 것 같아요. 시즌1,2로 보아 크게 기대는 안되지만 그래도 올빼미 법정이 소년 브루스 웨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번 기다려보죠.



고담의 팬이 아니라 배트맨의 팬으로서의 애정이 많이 들어간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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